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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lipse: Episode



이럴리가 없는데 .. 뭐가 잘 못 됐을까 .. 머리속이 하얘지는 가운데 .. 다시 카메라를 챙겨 마이산 서북쪽으로 방향을 향해 뛰었다.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에 해를 놓고 찍으려던 원래의 계획은 안개와 함께 흩어져 버렸다 .. . 8시 50분 .. . . 마이산을 돌아 넘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어버렸고 .. 방위를 잘못 읽은 탓에 마이산을 등지고 찍어야 한다. 어제 산에서 본 안내도가 다시 생각 나는데 .. 방위를 나타내는 4자 모양의 기호가 반대 방향이었던게 머리를 스친다.



대개 지도의 윗쪽을 북쪽 오른쪽을 동쪽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안내도에는 방위 기호가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동쪽 서쪽을 착각한거 같다. 보면서도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게 화근이었고.. 무엇보다 나침반을 챙기지 않은 내 실책이 가장 큰화근이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도 없고 ..  지금은 고민할 시간이 없다.



끝내 제대로된 위치를 찾지 못하고 마이산의 실루엣과 태양이 한 파인더 안에 담기지 않아 난감한데 .. 이때 알람이 울린다. 9시 25분 알람이다. 곧 일식이 시작 될거란 이야기다.
텅빈 주차장에 삼각대를 놓고 300mm 렌즈를 끼우고 일단 .. 테스트 샷을 날린다.



다행히 구름이 느낌이 좋다. 셔터속도도 충분하고. 그래도 이만하면 밋밋하진 않겠다 .. 괜찮겠다 .. 생각하는데 ..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올려다 본 하늘엔 배경이 되어 줄만한 구름이 한점도 없다 .. 초승달 같은 해를 구름과 함께 찍을 수가 없겠구나 .. 어제는 흐려서 속이 타더니 오늘은 날씨가 너무 맑아 속이 탄다. 난 이미 정신줄을 반쯤 놓았다.



9시 33분 .. 급한 마음으로 ND 50000은 될듯한  MRI 필름 필터를 끼우고 샷을 날리는데 ..
어느새 해가 먹히기 시작한다. 경이로운 천문현상 앞에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슬라이드 쇼: Reconstruction of the Eclipse i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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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0분. 한시간 넘게 직사광선을 받은 바디와 렌즈가 열을 받는다. 열을 받고 뜨거워진 망원렌즈의 포커스 조절 링이 자꾸만 흘러 내린다. 고도각 60도를 넘어 점점 높아져가는 태양을 잡으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자세로 뷰파인더를 보면서 300mm 렌즈의 포커스를 조절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식분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면서 광량이 줄어드는 까닭에 셔터속도가 느려진다. 예상은 했지만 대비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결국 몇 장의 사진은 배율이 안맞고 흔들리고 포커스가 흐리다. 마침내 일식은 절정을 지나 식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일식의 영향으로 기온도 2~3도 정도 떨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난 주차장 아스팔트와 함께 열이 오른다.

10시 50분 경. 300mm 망원렌즈로 일식의 진행을 연속으로 찍는 동안 17mm 광각렌즈로 부지런히 풍경사진을 시도하는데 .. 17mm의 광각으로도 70도에 가까운 고도각의 태양과 함께 담을만한 풍경이 별로 없다 .. 외진 곳에 위치한 주차장이라 일식을 관측하러 오는 사람도 없고 ..
자동차는 한대도 없다 .. 하는 수 없이 나무 밑에서 이파리들을 소품으로 넣어 찍었다.



단풍나무..



무슨나무.?.



아스팔트의 오목한 곳에 물을 붓고 웅덩이를 만들어 비치는 해를 찍어 보았다.. 노출 조건과 포커스를 동시에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력적인 일식 사진을 디자인 하기가 쉽지 않다.



12시 15분 경. 마침내 일식의 전과정은 끝나고 다시 해가 둥글다 . 그리고 오래동안 나를 고민하게 했던 긴장도  함께 끝났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 것 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생각해 보면 일식을 배경으로 그럴듯한 기념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마음만 앞서고 준비는 치밀하지 못했던 거 같다. 무엇보다 큰 실책은 나침반을 가져오지 않은 것 이다.
개미들은 일식과는 상관없이 부지런히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물어 나른다 ..



그렇게 세계천문의해 계획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끝나고.. 너무 늦기전에 서울에 도착 하려면 지금 짐을 챙겨야 한다. 마이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National Geographic의 정글 탐험가 컨셉으로 기념셀카를 찍었다. 마이산 까지 와서 기대했던 사진도 못찍고 무슨 허접한 셀카?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 뻘짓 이었다 ..



집으로 돌아 오는 길 .. 달리는 KTX 안에서 지는 해 를 바라보는데 씁쓸한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Eclipse: Epilogue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