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ə|strɑ:nəmi

Eclipse: Expedition

Prologue. 천안발 23시 57분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서 일식촬영 여행은 시작되었다.
올해 3월부터 계획했던 .. 하지만 요즈음 부쩍 바빠진 일들로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했던 ..
열차 안에서 생각해 보니 급하게 출발하느라 챙기지 못한 소품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
나침반, 각도기, 지도.. 삼각대도 하나뿐 .. 바디를 세대나 챙기느라 노트북 넣을 자리가 없다.
Remote Capture는 포기해야 한다. 벌써부터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가방은 이미 무겁다.
이때만 해도 나침반을 챙기지 않은 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 ..

21일 새벽. 전라북도 전주에 도착, 카메라가 많은 탓에 허름한 여관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일찍 일어난 아침 .. 그러나  내일도 비올것 같은 아침이다 .. 차라리 서울에 있을걸 그랬나 ..
서울과 창원에 전화를 해서 날씨를 묻는다 .. 밝은 목소리들 .. 여기만 날씨가 흐린것 같다.



내일 날씨에 대한 확신도 없이 진안행 시외버스를 타고 .. 다시 마이산행 시내버스 ..
마침내.. 마이산에 도착할 즈음, 비는 그치고 안개와 구름으로 가려진 마이산의 일부를 본다 ..
난 여기 왜 왔을까 .. 하필이면 왜 여길 왔을까 ..  여긴 사람도 없다 .. 날씨는 또 왜 이럴까 ..



21일 오후. 장소를 옮기려면 지금 출발해야 한다 .. 하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다 .. 화가 난다.
장마철 흐린 날씨에 대비해 네군데 정도 관측지를 캐스팅 해 뒀어야 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
3월부터 .. 내내 생각 했으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못마땅해 .. 화가 난다.
난 왜 화를 내고 있을까? 마이산 .. 후회 없이 둘러보자 .. 그러지 않으면 더 화가 날거같다.

오르는 내내 마음이 복잡하다 .. 이야기는 여기 저기 다 해놨는데.. 나만 못보는거 아닐까?? ..
비 개인 산을 오르는데 .. 문득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층암 절벽상(層岩絶壁上)의 폭포수(瀑布水)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쏼쏼,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巢父許由)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날씨에 연연해 하던 나는 어느새 구도를 잡고 포커스를 맞추며 셔터를 누르는 일에 집중한다.



도감에서만 보던 낮익은 벌레를 만났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반갑다. 근데 .. 이미 죽어있다.
(Phasmatidae Phraortes elongatus  대벌레)



왠 개를 만났는데 .. 울고 있다 .. 측은함 마음에 뭐라도 줄까 했는데 .. 줄게 담배 밖에 없다 ..



바위 너머로 시선을 등진 산사의 기와지붕을 만났다.
풍경은 보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조망하는 방향과 시간이 중요하다.
해가 저물면서 수채화 같던 풍경은 수묵화로 바뀌는데 .. 셔터속도가 점점 늘어진다 ..
ISO를 올리기는 싫고 .. 삼각대도 없는데 .. 사진은 그만 찍기로 했다. 민박집을 찾는다.

22일 아침. 눈뜨자 마자 잠결에 밖을 살핀다 .. 일곱시 반 인데 아직 어둡다. 비오는거 같다 ..



속상한 마음으로 .. 서울의 날씨와 택시요금을 생각하고 있는데 ..
비오는거 치고는 하늘이 너무 밝다는 .. 느낌 .. 다시 밖을 내다 본다.



그렇다 .. 안개다 ..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다시 방으로 들어가 기지개를 켜고 .. 이불을 개고 .. 세수를 하고 .. 썬크림을 바르고 .. 어제 봐둔 자리로 갔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걸 행복하게 바라보며 .. 삼각대를 준비하고 .. 노출과 화이트밸런스를 맞춰 보는데 .. 이거 뭔가 이상하다 .. 뭔가 잘못되었다 ..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진다 .. 해가 서쪽에서 뜨고 있다 ..

Eclipse Episode에서 계속 ..